NBA 스타들의 소소한 과거이야기 – (11) 카

NBA 스타들의 소소한 과거이야기 – (11) 카

“NBA스타들의 소소한 과거의 이야기”11편-카입니다.

*평어체 양해 바랍니다.

*동영상은 유튜브의 빵 카-코치(Coach), 이번”카”코너에서는 코치, 즉 NCAA와 NBA두 리그에서 지휘를 맡은 감독을 소개할 예정이다.

NCAA와 NBA는 농구 하는 종목이 마찬가지로 사실상 다른 리그와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다른 샷 클락(NCAA:45초 → 35초 → 30초, NBA:24초)과 경기 시간(NCAA:후반 20분씩 40분 NBA:12분씩 4쿼터 48분), 그리고 개인에게 허용되는 파울 수도 NCAA는 5개, NBA는 6개로 달리 NCAA는 팀 파울의 자유투도*원 앤드 원(One&One)제도를 적용하는 등 다른 부분이 상당히 많다.

즉, 이 두 리그에서 감독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성공 사례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많다는 것을 첫머리에 미리 알리다.

*원 앤드 원:NCAA는 전 후반 각각 7번째 팀 파울부터 팀 파울에 의한 프리 스로가 주어지지만 7~9개까지는 자유투 1개를 먼저 넣고 들어가면 2번째 자유투까지 던질 수 있고 실패하면 자유투의 기회는 거기서 끝난다.

10번째 팀 파울부터 기본 값으로 둘 다 주어진다.

랠리·브라운 NBA:30시즌 10팀의 “올해의 감독상”4회(1973,1975,1976,2001)우승 1회(2004, 디트로이트)NCAA:11시즌 3팀의 전미 올해의 감독상 1회(1988)우승 1회(캔사스)랠리·브라운은 현재까지 NCAA와 NBA두 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한 유일한 감독이다.

1940년생으로, NBA와 NCAA도 모두 41시즌 동안 감독직을 수행하고 70대 중반의 나이까지 NCAA의 SMU에서 지휘봉을 쥔 열정을 보였다 랠리·브라운은 그 후는 특히 적을 두지는 않았지만 아직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한 상황은 아니다(8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 시점에서 복귀은 사실상 쉽지 않지만)..)72-73시즌 32세로 당시 ABA의 캐롤라이나·크ー가ー즈의 감독으로서 첫 캐리어를 시작한 브라운은 그 후 덴버·나겟쯔를 거쳐서 1979년 NCAA의 최대 명문 팀인 UCLA감독으로 NCAA감독 경력을 시작한다.

첫 해부터 팀을 결승전·포에 보냈지만 비리 리크루팅에서 이 시즌 파이널·포는 공식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고, UCLA에서 2시즌을 보낸 뒤 다시 NBA의 뉴저지·넷트에서 2시즌을 보낸 뒤 83-84시즌부터 다시 NCAA의 캔자스 대학 감독으로 부임 5시즌째인 1988년 본인 감독 경력 첫 우승이자 캔사스 학교 사상 2번째 우승을 달성한다.

그리고 랠리·브라운은 우승 직후 샌 안토니오·스퍼스 감독직을 수락했고 다시 NBA에서 도전을 계속하고 LA클리퍼스 구단, 인디애나, 필라델피아, 디트로이트, 뉴욕, 샬럿까지 70세가 될 때까지 약 2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NBA감독의 지휘봉을 쥐고 있었다.

그리고 2004년 디트로이트의 배드 보이즈 2를 이끌고 LA레이커스를 파이널로 꺾고 63세로 NBA우승까지 달성, 현재도 유일한 NCAA와 NBA에서 우승한 감독이 됐다.

70세로 샬럿에서 물러난 브라운은 그 후에도 바로 NCAA의 SMU감독을 맡아 15년에는 SMU을 22년 만에 토너먼트에 진출시키는 등 늙어서도 더욱 활발해졌다.

그레그·포포우이쯔치과 관계 랠리·브라운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그레그·포포우이쯔치”일수록 브라운과 포포우이쯔치은 멘토와 멘티인 베스트 프렌드, 라이벌로 40년 집까지 관계를 계속하고 있다.

1940년생인 브라운과 49년생 포포우이쯔치은 9세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포포우이쯔치이 디비전 III의 초무명 학교에서 지휘를 맡은 1980년대 중반 브라운의 코칭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 봉사 코치의 개념으로 캔자스 대학의 코칭 스태프에 합류하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1988년 캔자스 우승 직후, 브라운이 샌 안토니오 감독으로 이적하며 당시 코치였던 R.C. 뷰포ー도과 그레그·포포우이쯔치 등을 함께 코칭 스태프에 데려갔다.

훗날 뷰포ー도과 포포우이쯔치이 단장으로 감독으로 샌 안토니오 왕조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바로 랠리·브라운이다.

브라운과 포포우이쯔치은 둘도 없는 친구이지만, 성향은 전혀 다른 것도 재미 있는 사실이지만, 브라운이 다소 즉흥적이고 모험을 즐기는 스타일이라면 군인 출신답게 포포우이쯔치은 변화를 추구하는 것보다 본인이 정한 틀 속에서 철저히 움직이면서 결과를 내는 스타일이다.

이는 이들의 경력과 사생활에서도 드러나지만 브라운이 3명의 아내와 결혼 생활을 하는 등 다소 자유 분방한 연애를 즐긴 반면 포포우이쯔치는 평생 한 아내와 살다 2018년 4월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5년 이상 지났지만 현재까지 재혼에 관한 기사나 소문은 일절 나오지 않는 지고한 결혼 생활을 했다.

감독으로 걸어온 길만 보더라도 완전히 대조적이지만, 브라운은 NCAA, NBA을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을 한 팀 지휘봉을 잡은 것이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필라델피아에서 보낸 6시즌에 불과한 반면 포포우이쯔치은 96-97시즌 중반 샌 안토니오·스퍼스 감독에 부임하면서 이번 23-24시즌까지 한번도 팀을 떠나지 않고 28시즌 동안 스퍼스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어, 종래의 기록 유타·재즈 감독의 23시즌을 훨씬 넘는 NBA역대 단일 팀 최장 부임이다.

그리고 이 두 사제 관계는 2005년 파이널다는 꿈의 무대에서 상대 팀으로 만난 적도 있지만, 직전 시즌 우승 팀은 디펜딩 챔피언, 래리·브라운의 디트로이트와 2시즌 전 우승 팀이었다 포포우이쯔치의 샌 안토니오가 대결하며 전략 전술의 대가들답게 최강의 수비 농구에서 두 팀은 혈전을 벌이며 제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샌 안토니오가 승리, 포우이쯔치는 경력 3번째 우승을 브라운은 경력 2번째 준우승을 하게 된다.

[사제 사이의 외나무 다리 승부, 2005년 NBA파이널 제7전 하이라이트]https://youtu.b

철저한 팀 농구, 수비 농구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색이 비슷했지만 샌 안토니오에는 팀·던컨과 마누·지노비리이라는 내부, 외곽에 크렉이 각각 한명씩 있는 반면 디트로이트는 혼자서 경기 흐름을 바꿀 만한 선수는 못한 것이 승부를 갈랐다.

팀 덩컨 제7전 기록:25점 11리바운드 3어시스트 2브락마느·지노비리 제7전 기록:23점 5리바운드4어시스트브래드·스티븐스 NBA:8시즌 1팀(2013~2021보스턴·셀틱스)NCAA:6시즌 1팀(2007~2013, 버틀러)준우승 2회(2010,2011)현 보스턴·셀틱스 단장을 맡고 있는 브래드·스티븐스는 랠리·브라운과 함께 NCAA와 NBA에서 성공을 거둔 사실상의 유·이·한 감독으로 꼽힌다.

브라운과의 결정적 차이는 우승 트로피를 한번도 들지 못했다는 점인데, 아직 젊은 인재인 만큼 언제든지 다시 현장에 복귀하고 우승할 수 있는 역량은 충분한 감독이다.

스티븐스는 매우 독특한 과거의 행태에서도 화제가 됐지만 먼저 스티븐스는 고교 시절까지 농구 선수를 하고 인디애나 주 내에서는 꽤 두각을 나타냈지만 신체적 한계 때문인지 장학금의 제안은 거의 받지 않고 결국 디비전 III, 고향인 인디애나 주의 매우 작은 학교인 돗포ー(DePauw)대학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하지만 4학년 때도 평균 5점에 그치는 대학 무대에서는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결국 농구 선수로 브래드·스티븐스는 그곳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스티븐스는 졸업 후 미국 굴지의 제약 회사인 고향인 인디애나 주에 본사가 위치한 “Eli Lilly and Company”에서 꽤나 페이의 직장인 제안으로 안정적으로 풍부하고 평범하게 인생을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이 더 늘어났다.

결국 스티븐스는 집사의 무보수 보조 코치로 들어가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고행 길을 시작한다.

그리고 2000년부터 7년간의 고난 끝에 2007년 30세 때 집사의 감독으로 승진하는 데 연봉 18,000달러(약 2,400만원)의 박봉 어시스턴트 코치 시절에도 하루 14시간씩 비디오 분석하는 노력과 농구에 대한 열정이 맺은 결실이었다.

물론 스티븐스가 맡기 직전 시즌에도 토너먼트 16강까지 올라갈수록 버틀러대가 당시 약 팀이 없었지만, 스티븐스는 감독 첫 시즌에 정규 시즌에서 단 3패만 하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하고 7번 시드로 2년 연속 팀을 토너먼트에 진출시키며 토너먼트에서 1승을 거두며 데뷔 시즌부터 가능성을 보였다.

그리고 대망의 09-10시즌 Horizon콘퍼런스 일정 18전 전승을 거두고 제5번 시드로 토너먼트에 진출한 버틀러는 어떻게 결승전까지 오르는 최고의 신데렐라 학교가 되면서 결승에서도 최강의 듀크를 상대로 거의 승리하는 등 전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브래드·스티븐스”라는 이름은 대학 농구의 젊은 명장을 논할 때 꼭 등장하는 이름이다.

10-11시즌 에이스였던 고든·헤이와ー도이 NBA에 진출하고 지난 시즌보다 정규 시즌의 연기는 크게 떨어지고 결국 8번 시드로 겨우강에 진출한 버틀러대는 그러나 토너먼트에서 가장 시드 시러큐스, 2번 시드의 캔자스·스테이트, 5번 시드의 미시간·스테이트까지 잇달아 휩쓸고, 2년 연속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에서 코네티컷에 패하면서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지만 스티븐스는 이제”집사”이라는 미 메이저 콘퍼런스 소속 학교가 넣기에는 너무나 큰 그릇이 되는 비수기마다 감독을 필요로 하는 메이저 콘퍼런스 학교 후보군에 올랐고 NCAA을 대표하는 명장의 반열에 오른다.

UCLA가 스티븐스 획득 때문에 연간 3M까지 제안했다는 소문까지 벌어졌지만 의외로 스티븐스 감독의 선택은 NBA이고, 그것도 최고의 명문 팀 보스턴·세루팃 쿠스였다.

셀틱스의 금액은 6년 22M으로 연간 4M가까이 되는 큰 금액이지만 대학 무대에서 NBA에 큰 장기 계약을 받고 이적한 과거의 선배 감독(존·칼리 파리, 릭·피티노 등)의 사례 등에서 NBA에서 선수는커녕 보조 코치 생활도 한 적 없는 스티븐스에 과도한 금액과 기간이 아니냐는 혹평이 잇따랐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스티븐스가 감독 2년째의 시즌 40승 42패로 7번 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 것을 시작으로 이메우도카에 감독 자리를 내주고 단장이 될 때까지 매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팀을 리드하고 컨퍼런스 파이널 3회 진출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파이널 진출 0번은 조금은 아쉽다.

)누구보다 스마트하지만 선수단 장악, 카리스마 등에서 2%의 아쉬움을 남기고 본인 스스로도 현장의 수장인 감독보다 Office의 수장인 단장이 어울린다고 판단한 스티븐스이지만 개인적으로 스티븐스 감독의 현장 지휘를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근거는 하나도 없는 무모한 예측이지만 대학 무대에 돌아가고 Blue Blood팀 수장으로서 그 대학을 우승으로 이끄는 스티븐스 감독의 모습이 10년 이내에 펼쳐지는 것 같기도 하다.

[2010 NCAA결승전 집사 vs듀크 하이라이트]https://youtu.be/zi2WTWs4PQ0

정확하게 하프 라인에서 던진 고든·헤이와ー도의 버저 비터 슛이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지만 이것이 들어 있다면…?프레드·호이 버그 NBA:4시즌 1팀(2015~2018, 시카고·불스)NCAA:9시즌 2팀(아이오와·스테이트 5시즌, 네브래스카, 4시즌)Big12올해의 감독상 1회(2012)프레드·호이 버그 감독은 NBA감독의 선택이 지금까지 감독 경력을 보고약간 독이 된 사례.10년 30대 후반의 나이에 모교의 아이오와·스테이트 감독으로서 감독 경력을 시작한 호이 버그는 5시즌에서 115승 56패, 승률 67.3%라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첫 시즌을 제외하고 4시즌은 모두 팀을 토너먼트에 보내는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고는 토너먼트에서도 매년 1승 이상씩을 주며 아이오와·스테이트의 중흥기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시기, 조제니 안과 몬테 모리스란 NBA급 선수들도 키우며 감독으로서의 주가를 높였다.

호이 버그 감독은 15-16시즌, 본인이 선수 시절 전성기 때 4시즌 뛴 시카고·불스의 감독으로 이적하며 NBA감독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한다.

10년대 초, 탐·티보듀ー 감독 체제에서 매 시즌 우승을 노리는 정도의 강한 팀이었으나 레브론, 제임스라는 거대한 산에 막히고 파이널 무대를 한번도 밟지 못하고 티보듀ー 감독을 경질한 불스가 호이 버그라는 NBA감독의 경력은 얕은 인물을 감독으로 선임한 것은 상당히 의외의 선택이라는 평가가 많아 첫 시즌 지미·버틀러와 파우·가 설, 데릭·로즈가 모두 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고 이는 불스가 계속된 7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종지부를 찍다소 실망한 성적이었다.

16-17시즌 불스는 가 설이라고 로즈가 팀을 떠나고 새로 영입한 도우에잉, 웨이드와 지미·버틀러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호이 버그는 시카고에서 보낸 4시즌 중 오직 이 시즌 플레이오프에 팀을 진출시킨다.

8번 시드였던 불스는 첫 시드, 보스턴·셀틱스를 상대로 원정 첫 2경기를 모두 취하고 깜짝 이변의 주인공이 될까 했는데, 주전 포인트 가드인 구심점인 라종·론도가 부상으로 3회전부터 계속 빠지고 결국 3-6회전을 전부 빼앗기1라운드 탈락했다.

한계를 느낀 시카고 구단은 30대 베테랑이었다 론도, 웨이드와 집사를 모두 처분하고 잭·라빈과 라우리ー·마카 점토 등을 중심으로 한 20대로만 구성된 로스터에서 팀을 완전히 뒤집고 일부에서는 대학 무대 감독으로서 경력을 시작한 호이 버그에는 이런 팀 구성이 더 적합한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있었지만 지금은 빗나갔다.

호이 버그는 17-18시즌 27승 55패, 그리고 18-19시즌 5승 19패를 기록하며 2018년 12월에 경질되고 NBA의 무대를 떠났다.

호이 버그 감독은 불스에서 경질된 후 아이오와 주에 비해서 농구 프로그램이 훨씬 열악하다고 말할 수 네브래스카 대학의 감독으로 NCAA무대에 복귀하지만, 복귀 첫 2시즌 동안 14승 45패를 기록하는 등 그동안 네브라스카 주에서 40승 83패, 승률 32.5%를 기록하고 대학 무대에서 명성을 떨친 지휘 능력도 아직 별로 빛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2017플레이오프 제2전 시카고·불스(8)vs보스턴·셀틱스(1)시카고·빅 3하이라이트]https://youtu.be/KkrP5fdJGyI(아마도)호이 버그 감독이 NBA감독으로 재직하면서 가장 행복을 느낀 경기이다.

지미·버틀러:22점 8리바운드8어시스트 4스틸 2블랙 도우에잉·웨이드:22점 4리바운드라 존·론도:11점 9리바운드14어시스트 5스틸 존카리파리 NBA:3시즌 1팀(1996~1999, 뉴저지·네츠)NCAA:32시즌 3팀(매사추세츠, 멤피스, 켄터키 – 현재 진행형)우승 1회(2012)NCAA에서 무려 30시즌 이상 지휘했고 파이널 4회(공식 인정 받는 기록은 4회)우승 1회 등의 업적을 남겼고, 현재까지 총 승수 790승으로 역대 NCAA감독 최다 승 14위에 랭크 되어 있다 존·칼리 파리는 00년대 후반부터 원 앤드 아웃(1학년만 마치고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것)을 장려하고 모집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5스타 신입생을 대거 휩쓸기로 유명한 감독이다.

실제로 Top고교의 유망주를 항상 데리고 가 1학년을 마치고 NBA에 가는 전략으로 현재 NBA에서 뛰고 있는 많은 선수가 “칼리 파리”의 제자인, 그래서 NCAA을 몰랐고 NBA만 관람하는 팬도 “칼리 파리”의 이름은 많이 들은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실제로 칼리 파리가 NBA감독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지만, 칼리 파리는 매사추세츠에서 8시즌 동안 좋은 성적을 남긴 뒤 1996년 당시 NBA감독 최고 대우인 감독 겸 단장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5년 15M계약을 체결하고 뉴저지·넷트 감독에 부임하게 된다.

1959년 2월생의 칼리 파리의 당시 나이가 37세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조건은 더욱 파격적으로 느껴지지만 첫 시즌 96-97시즌 26승 56패로 직전 시즌보다 4승도 낮은 성적으로 마친 칼리 파리는 97-98시즌을 앞두고 과감한 트레이드를 통해서 전체 2번 올림픽에서 필라델피아에 지명된 대형 루키 키스·밴·폰을 데리고 온다.

당시에는 이례적인 3점 슛을 날려빅맨였던 방·혼은 데뷔 시즌부터 19.7점, 6.6리바운드를 기록한다.

켈리·키톨즈, 제이슨·윌리엄스, 샘·카셀, 켄달·길 등 올스타급이 되기에는 조금 모자라지만(물론 카셀은 만년에 1회 선정되는 것은 있다), 자신의 역할에서 욕심 내지 않고 이타적인 플레이를 펼쳐20대 선수들을 끌자 칼리 파리의 진면목이 나오기 시작하고 칼리 파리는 43승 39패로 4년 만에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다.

비록 이 시즌 우승 팀인 마이클·조던의 시카고·불스를 만나고, 1라운드에서 스위프 패배를 당했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팀에 넷트의 색깔을 완전히 바꾸고”역시 칼리 파리”라는 찬사까지 듣게 된다.

그러나 98-99시즌, 파업으로 평소보다 4개월 가량 늦은 2월 개막하는 단축 시즌으로 펼쳐진 이번 시즌에 뉴저지는 첫 20경기 3승 17패라는 믿기 어려운 성적표를 받아들고 완전히 와해하고 카리파리도 계약 기간을 상당히 남긴 시점에서 경질되고 만다.

그리고 99-00시즌,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 잠시 어시스턴트 코치를 한 칼리 파리는 00-01시즌부터 멤피스 대학의 감독으로 NCAA무대에 복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NCAA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칼리 파리는 NCAA에서도 희비, 좋고 싫음이 확실히 나뉘어 스타일의 감독이다.

원·앤드·단에 의해서”육성과 성장”이라는 대학 농구 본래의 전통을 망쳤다는 혹평도 들지만, 거꾸로 이런 전략으로 전국구 스타를 휩쓸”리크루트의 귀재”이란 별명도 붙는다.

또 빅맨들에게 슛과 1대 1의 공격을 철저히 봉인하는 다소 진부한 철학에서 칼리 파리 산하에 있던 빅맨들(ex-안니, 데이비스, 칼-안니, 타운즈 등)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지만 본인이 키운 슈퍼 스타 가드들, 데렉·로즈와 존·월 등에는 유로 스텝을 적극 장려하고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이번 2023드래프트에서 켄터키의 케이 송·우오라스이 전체 10번에서 OKC에 지명되어 무려 16년 연속으로 본인을 제자 중에서 1라운드 픽 선수를 배출하는 진기록을 세운 적도 있다, 우오라스이 칼리 파리 산하 선수 중 19번째 Top10올림픽 선수가 되는, 마이크, 슈 세 푸스 키(24명)에 이어해당 분야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슈세프스키ー 감독이 은퇴한 현 시점에서 칼리 파리가 1위에 오르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이며 논란의 여부와는 별도로 칼리 파리가 대학 무대 최고의 명장의 한 사람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빌리·도너번 NBA:9시즌 2팀(OKC5시즌 시카고 4시즌)NCAA:21시즌 2팀(마셜 2시즌, 플로리다 19시즌)콘퍼런스 올해의 감독상 4회(1995,2011,2013,2014)우승 2회(2006,2007)현 시카고·블스 감독인 빌리·도너번도 NCAA와 NBA에서 감독직을 수행한 경력이 있다 특히 대학 무대에서는 명장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우선)감독은 릭·피티ー 노 감독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도너번은 프로비던스 대학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도너번이 3학년 시즌인 85-86시즌, 릭·피티노 감독이 프로비던스 감독에 부임할 도너번이 4학년이던 86-87시즌 프로비던스는 6번 시드로 파이널·포·스테이지까지 최대의 신데렐라 팀이었다.

그리고 그 프로비던스의 에이스가 평균 20.6점, 7.1어시스트를 기록한 베테랑 가드)이며 이 시즌 파이널 공격으로 피티ー 노 감독도 미국을 대표하는 젊은 명장으로 부상하게 된다.

파이널 4로 세상을 대표하는 스타가 된 도너번은 1987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22회 전체 68회에서 유타·재즈에 지명되지만 재즈에서는 데뷔하지 못하고 베버된 고향 팀인 뉴욕·하이닉스에 재입단하지만 87-88시즌 44경기 평균 2.4점에 그쳤고 결국 선수로서의 도너번은 여기까지였다.

5-11(180㎝), 171파운드(77㎞)도너번은 어른 프로 무대에서 플레이하려면 체력의 분명한 한계가 있어 결국 1989년 20대 초반의 나이로 바로 지도자의 길로 나아간다.

은사의 릭·피티ー 노 감독이 89-90시즌부터 맡게 된 전미 최강 팀, 켄터키 대학의 코칭 스태프로 합류한 도너번은 1993년 피티ー 노 감독과